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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좌담회]역대 편집인·편집국장이 바라본 '의협신문 40년

[특별 좌담회]역대 편집인·편집국장이 바라본 '의협신문 40년

  • 이현식 기자 hslee03@kma.org
  • 승인 2007.03.16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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쌓인 연륜 만큼 책임 있는 보도 기대

사회:편만섭
취재팀장

김병길 12대
편집임

유태연 14대
편집인

한광수 15대
편집인

최인수 3대
편집국장

박근영 5대
편집국장

의협신문이 올해로 불혹(不惑)의 나이에 접어들었다. 본지가 지난 40년간 의료계 최고의 정론지로서 의료전문 언론의 롤 모델(role model)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역대 편집인과 편집국장의 헌신과 기여를 빼놓을 수 없다. 이에 김병길·유태연·한광수 전 편집인(의협 공보이사)과 박근영·최인수 전 편집국장을 초청해 의협신문의 과거와 미래를 들어봤다. 좌담회는 편만섭 본지 취재팀장의 사회로 13일 오후 6시부터 10시30분까지 의협 회관 인근 금보석에서 진행됐다.<편집자 주>

▲사회:편만섭 부국장(의협신문 취재팀장)

▲참석자:김병길 12대 편집인(1988.  5∼1991. 4)
     유태연 14대 편집인(1994. 5∼1997. 4)
     한광수 15대 편집인(1997. 5∼2000. 4)
     최인수 3대 편집국장(1976. 12∼1989. 5)
     박근영 5대 편집국장(1995. 2∼1999. 3)

▶사회자〓금년이 의협신문 40돌입니다. 지난간 날을 돌아보고, 앞으로 어떤 길을 가야할지 조언을 듣고자 모셨습니다. 형식에 구애받지 말고 말씀해 주시죠.

▶유태연〓의협신문 편집인을 맡은 게 지난 1994년 5월입니다. 당시 의협신보는 세로쓰기에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넘기는 편집형식이었는데 가로쓰기로 변경하고 싶었죠. 그래서 편집위원회에서 얘기했는데 위원들이 다 반대하더군요. 결국 후에 한광수 선생님이 이걸 했죠.

▶한광수〓가로쓰기로 변경할 당시의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가로쓰기로 가긴 가야겠는데, 상임이사회에 올리면 승인해주지 않을 게 너무나 뻔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냥 다음 주부터 바로 가로쓰기로 발행하기로 결정하고 시행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다음 상임이사회 때 아무도 거기에 대해서 얘기하는 사람이 없더라구요. 다들 바빠서 거기에 신경을 못쓴거죠. 나중에는 알게 되더라도 자신의 무관심을 드러낼 수는 없었으니까 그걸 가지고 말하는 이사들이 없었습니다. 의협신보가 전문지 중 최고니까 다른 신문도 따라올 것이라는 확신도 있었고, 실제로 그렇게 됐습니다.

▶최인수〓'개원의'라는 용어도 의협신문에서 가장 먼저 썼습니다. 그 이전에는 개업의라고 했죠. 의협신문 편집위원회에서 개원의라고 사용하기로 하고 쓰기 시작했는데, 이제는 일간지를 비롯해 완전히 정착됐죠. 그리고 이전에는 신문 조판을 수요일과 토요일에 하다가 의협신문이 가장 먼저 화요일과 금요일(현재는 목요일)로 바꿨죠. 의협신문은 항상 의료 전문언론 가운데 선두를 지켜왔습니다.

▶김병길〓창간 40주년을 맞은 만큼 이전에 발행했던 신문 보관에도 신경을 써야 합니다. 2부씩 보관하고 있지만 창간호의 경우 약품 처리 등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아 많이 손상됐습니다. 내용을 마이크로필름에 담을 수는 있지만 창간호 신문 자체가 역사적 가치가 있는 것이죠. 이번 기회에 박물관이나 도서관 등에 문의해 창간호를 찾아보고, 의협신문에 '창간호를 찾습니다' 제목으로 사고를 내서 창간호를 소장하고 있는 분께 보내달라고 하는 게 좋겠습니다. 그리고 창간호를 복사해서 신문사 입구에 전시해놓는 방법도 어떨까 싶네요.

▶박근영〓1967년 3월 창간 때 제가 견습기자로 들어왔으니 창간 멤버입니다. 당시 회원 수가 8000명 정도였고, 발행 부수는 1만 2000부 가량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 당시 신문을 보면 돋보기로 봐도 보기 어려울 정도로 글씨가 작았죠.

▶최인수〓편집국장으로 13년 간 재직했습니다. 당시 홍보실이 없어서 회장님 축사와 기념사 작성을 신문사에서 제가 했는데, 그 때문에 정작 본연의 업무는 제대로 할 수가 없었죠. 결국 회장님께 말씀드려서 홍보실을 만들었고 후에 주필 겸 홍보실장을 맡았죠.

13일 열린 역대 편집인·편집국장 좌담회에서 참석자들은 '신문'은 단순한 회보나 관보가 아니라 '언론'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꺾이지 않은 정론으로서 자리매김 되기를 기대했다.

당시 김병길 공보이사님과 함께 신문사에 간판을 달았던 것도 기억에 남습니다. 그리고 그때 의협 사무처는 전화기가 버튼식이었는데, 신문사만 다이얼식이어서 바꿔달라고 했습니다. 기자 업무상 전화를 많이 하는데, 다이얼 돌리느라고 시간 다 갔으니까 말이죠.

▶김병길〓창간 당시 동아의료저작상을 만들었습니다. 지금도 수상자 선정이나 실무는 신문사에서 하지만, 시상을 의협 총회 때 하게 되면서 신문사 창간기념식 때 함께 할 행사가 없어졌죠. 그래서 보령제약 측과 접촉해서 새로 상을 만들어 창간기념식 때 시상하게 됐죠. 보령의료봉사상은 지금 매우 큰 행사로 발전했습니다. 참 잘 한 일이죠. 하지만 동아의료저작상이 본래 교과서 저술에 대한 시상이었는데 올해부터 논문까지 포함해 동아의학상으로 바꾼 것은 잘못됐다고 봅니다. 논문에 대한 시상은 현재도 많이 있는 반면 교과서에 대한 상은 동아의료저작상이 유일했으니까요.

▶한광수〓요즘 의료법 비대위에서 포스터를 만들었는데, 이런 것을 의협신문에 인쇄하거나 간지로 넣어서 회원들에게 전달했으면 좋겠습니다. 포스터가 시도의사회를 거쳐 구의사회 등 소속 의사회까지 오려면 시간도 많이 걸리고 잘 전달이 안 되니까요. 그리고 한자를 섞어서 썼으면 합니다. 적어도 이름이나 지명은 괄호로 해서 말이죠.

▶유태연〓신문사 편집인으로서 제일 중요한 것은 예산 운영 부문입니다. 정기대의원총회 때마다 흑자냐 적자냐, 빚이 얼마냐 이런 부분들을 집중 검토하게 되니까요. 기사 작성과 편집에 관한 것은 기자들이 전문가니까 맡겼죠. 말하자면 편집권의 독립이죠. 제 재임기간 중에는 잘 넘어갔습니다.

▶김병길〓제가 편집인을 맡았을 땐 의협신문은 적자였습니다. 사무 비품도 가장 오래된 것들로 채워져 있었죠. 소파는 다른 부서에서 쓰다가 버린 것을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책상과 의자 다 바꾸고 팩스 2대와 소파도 새로 구입했습니다. 적자라도 필요한 것은 구해놓아야 업무가 돌아가지 않겠습니까. 광고를 위해 노력도 많이 했죠. 제약회사에 일일이 전화해서 협조를 구했으니까요.

▶최인수〓지금도 그렇지만 의협신문 자체는 흑자입니다. 대한의사협회지 등 간행물 사업까지 다 포함하니까 적자지요. 신문사에 흑자가 나면 영리회사가 아니라서 세금으로 나가니까 절세 방법의 일환으로 적자인 협회지와 함께 운영하는 것이죠.

▶박근영〓창간 당시엔 의협 직원 수와 의협신문 기자 수가 비슷했습니다. 특집이 있으면 일요일도 나와 일하고 열정이 대단했습니다. 당시 의협신보는 의협과 완전히 독립채산제로 운영되어서 월급 체계도 다르고 경리업무도 구분됐습니다. 기자들의 위상이나 후생 수준도 일간지에 버금갔지요. 그런데 한격부 회장 시절 의협에 흡수되면서부터 의협신문이 많이 꺾였지요. 편집국이라는 하나의 부서가 되면서 사실상 신문사가 없어진 것이죠. 그래서 외부에 취재 나가면 의협 직원이 여기서 뭐하느냐 해서 기가 죽기도 했습니다.

▶김병길〓의협신문 직제가 현재 사무총장 밑으로 되어 있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발행인인 의협 회장 직속기관으로 해야지, 사무총장 산하 하나의 국 역할밖에 못해서야 되겠습니까. 창간 당시 의사 회원 수가 8000명선에서 이제 의사면허 번호가 9만 5000까지 나와 10배 가까이 늘었는데, 기자와 광고 담당 등 신문사 인력은 25명 내외로 창간 당시와 거의 차이가 없습니다. 나이만 40을 먹었어요.

▶유태연〓의협신문은 집행부와 관계없이 회원들에게 정확한 소식을 전달해줄 의무가 있습니다. '신문'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상 단순한 회보나 관보가 아니라 '언론'입니다. 의협 직선제의 폐단이나 집행부의 잘못에는 따끔한 소리도 실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신문의 존재 이유가 없어지죠.  

▶박근영〓신문사는 기를 살려줘야 신이 나서 잘합니다. 기자로서 그리고 신문사로서의 특성을 살릴 수 있게 별도 기구로 설치해야 합니다. 해외 특파원까지는 아니더라도 통신원 제도 정도는 필요합니다. 의협 기관지로서의 특징과 발행 목적에 대해선 특별히 말 안해도 기자들이 더 잘 이해하고 있으니까요.

▶김병길〓최근 의협신문 1면의 형식과 색을 바꾼 것은 참 잘 한 것입니다. 딱 보면 의협신문이라는 게 눈에 띄니까요. 제가 편집인 할 때는 매달 테마별로 편집회의를 했습니다. 다른 전문지와 차별화하기 위해선 사건 위주의 보도기사 외에 현안이 되는 테마를 정해서 보도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광수〓의협신문은 의약계 대표신문으로 의사뿐만 아니라 정부나 다른 단체들도 보는 것인데, 시각이 조금 편향된 것 같습니다. 기사나 사설과 오피니언 코너가 의료계 전체를 계도하는 것으로 도약했으면 좋겠어요. 창간 당시와 지금의 사세가 비슷하다는 것은 충격입니다. 올해 의협신문 40주년과 내년 의협 100주년이라는 기회를 잘 이용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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